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평양 전쟁/배경 (문단 편집) === 미국의 고립주의 === 사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때만 해도 미국은 '지역강국 중의 하나' 정도의 이미지로, 미국이 스스로 의도 혹은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였다. 물론 공업 생산량이나 경제 규모로 보나 여러가지 측면에서 [[미국]]이 [[대영제국]]을 뛰어넘은 것은 훨씬 전이었으나, 대외적으로 미국이 [[초강대국]]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. 미국은 이미 [[20세기]] 초반에 영국, 프랑스, 독일 등 유럽열강을 모두 합한 정도의 경제규모에 도달했지만, 스스로 세계 최강국이라는 인식이 부족했다. 애시당초 지금 군사력으로 일부분에서 미국 다음가는 러시아도 미국 때문에 큰 규모의 전쟁을 시도조차 하지 않을 정도지만 당시 독일군은 영프에게 본토가 털린건 내부의 적이 원인이라고 믿고 [[뮌헨 협정|저 둘이 저자세로 나오자]] 1차대전때 그렇게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을 일으켜버린다. 그만큼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의 인식은 과소평가되고 있었다. [[17세기]]부터 내려온 서유럽 중심의 세계 패권 경쟁에는 도전하지 않으면서 [[미서전쟁]]으로 [[쿠바]]와 [[푸에르토 리코]], 그리고 태평양 지역의 섬 몇개, 앞마당인 카리브해와 중남미 지역에서 주도권을 잡는 정도에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. 쉽게 말해 당시의 미국은 '''[[힘숨찐]]'''이었다. [[제임스 먼로#s-3.1|먼로 독트린]] 조항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중남미와 태평양 지역의 패권만 유지해서 본토의 안전에만 관심이 있었다. 나치 독일의 팽창에 대해서도 대체로 불간섭주의 위주였다.[* 대표적인 인물이 [[존 F. 케네디]]의 아버지로 당시 주영국대사였던 조지프 케네디와 당시 [[미국 부통령|부통령]] [[존 낸스 가너]].][* 정반대의 경우가 [[중국]]으로 서구 열강은 [[청나라]]를 '잠자는 사자'라고 생각하여 건드리지 않았으나 [[아편전쟁]]으로 청의 유약함이 드러나자 앞다투어 뜯어 먹겠다고 찾아왔다. 그 결과가 오늘날의 [[홍콩]], [[마카오]].][* 사실 '잠자는 사자'라는 말의 의미는 청나라가 강대국이어서 잘못 선공했다가는 역관광당한다는 의미라기보단, 중국의 광활한 영토와 수많은 인구때문에 금방 서양의 우수성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. [[중국/경제]]항목의 역사적맥락 참조] 경제적으로도 미국은 경제대공황의 복구가 끝나지 않았으며, 먼로독트린을 비롯한 고립주의적 국방정책과 공황으로 인한 군축으로 1930년대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 17위 수준에 불과했다. 따라서 미국이 전쟁에 돌입하더라도 그 경제력을 군사적으로 동원하려면 수 년의 시간이 필요하고, 그 시간 전에 태평양에서 인도네시아 등을 확보하여 석유 등 자급적 경제를 확립하면 중일전쟁이 아무리 지구전이 되더라도 결국 승리할 수 있으며, 자원이나 미국 경제에 휘둘리지 않으므로 당시 동아시아쪽에서는 필리핀을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을 보이던 미국에게도 버틸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던 것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